분청사기는 고려말기 상감청자의 제작 전통을 계승해 조선 전기까지 전국의 가마터에서 제작된 자기로, 다채로운 장식 기법과 문양 소재 등을 고유한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분청사기에는 고려청자의 전통과 조선만의 새로운 장식 기법 및 독창적인 소재 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미감은 이후 조선의 백자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분청사기는 조선의 도자기 문화는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켰지만 16세기 본격적인 백자의 유행으로 서서히 제작이 중단되었다.
1. 분청사기의 개념
'분청사기(粉靑沙器)'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제작된 자기를 지칭하는 학술 용어로, 1930년대 말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 선생이 창안한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분청사기'는 조선 전기에 실제로 사용된 고유 명사는 아니었으며 사료에서도 확인된 예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까닭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시마三島(みしま)'라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인 학자인 고유섭 선생이 '백토를 분장한 회청색 사기'라는 의미의 학술적인 용어로 새롭게 정리한 것이 '분장회청사기'였고, 이 용어가 이후 '분청사기'로 축약되면서 현재까지도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발생하였으며, 조선의 백자가 성행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고려의 강진 자기소가 해체되고, 조선의 관요인 분원이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기까지 분청사기는 공물의 한 종류로 전국에서 제작되었다. 실제로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전국에 산재한 자기소와 도기소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15세기 전반의 가마 위치와 도자기의 품질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자기소와 도기소에서 주로 분청사기를 제작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렇게 전국에서 제작된 분청사기는 조운선을 통해 중앙으로 상납되었다. 그 결과 분청사기에는 장흥고(長興庫), 내섬시(內贍寺), 내자시(內資寺) 등과 같이 중앙에 상납될 관사 이름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2. 분청사기의 다양한 장식 기법
분청사기는 그릇 표면의 전체나 일부분에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문양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청자나 백자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분청사기의 종류를 백토를 분장하고 무늬를 나타내는 장식 기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7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상감(象嵌) 기법은 크게 선상감과 면상감으로 나눌 수 있다. 선상감은 조각칼로 원하는 문양을 선각하고, 오목하게 음각된 부분을 백토나 자토로 메워 희고 검은 선들로 문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장식 기법만 놓고 보면 분청사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릇 표면에 백토를 바르는 과정이 없고, 오히려 고려시대 상감청자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려말기에 강진자기소가 해체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된 간지명 청자로부터 조형적인 연원을 두고 있다. 이는 고려 왕조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새롭게 세워졌다 하더라도, 청자의 제작 전통이 분청사기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고려 상감청자를 답습한 문양들이 간략화되어 표현되다가 15세기 후반 이후로는 제작양이 크게 감소한다. 한편 면상감은 선상감과 달리 원하는 문양을 넓게 면으로 파서 백토를 넣은 것으로, 박지기법과 같은 효과를 준다.
- 인화(印花) 기법은 문양이 볼록하게 새겨진 무늬 도장을 그릇 표면에 찍은 후에 오목하게 들어간 문양 부분을 백토로 분장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듬성듬성하게 시문 했지만 점차 그릇 전체를 빽빽하게 채우는 양식으로 발전했다. 특히 그릇 전체를 구획하고 인화문을 빽빽하게 채운 인화분청사기에는 관아 이름, 생산지, 장인 이름 등을 새긴 예들이 많은데, 이는 조선 조정에서 분청사기의 질이나 수량 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 초기 분청사기의 구체적인 제작 시기와 제작 수준 및 장식기법, 소재 등을 종합적으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 공물의 유통과정도 함께 엿볼 수 있다.
- 박지(剝地) 기법은 백토를 분장한 후 문양을 새기고 문양 이외의 배경 부분을 긁어냄으로써, 백색 문양과 회청색 태토를 대비시키는 장식기법이다. 문양은 주로 모란, 모란당초, 연꽃, 연화당초, 물고기 등이 사용되었는데 전북 고창 용산리, 광주 충효동, 고흥 운대리 등과 같이 주로 호남지역에서 제작되었다.
- 조화(彫花) 기법은 백토를 분장한 후 문양을 선으로 새긴 것이다. 이렇게 하면 회청색 태토가 무늬선으로 나타나 하얗게 분장된 바탕과 대비되는 효과가 있다. 주로 박지기법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모란, 모란당초, 연꽃, 연당초, 물고기, 버드나무, 인물 등이 사실적이거나 추상적으로 표현된다.
- 철화(鐵畵) 기법은 백토를 분장한 후 철분이 많이 포함된 안료로 문양을 그린 것으로, 추상적이고 회화적이다. 산화된 철 안료를 물에 개어 붓으로 그린 후 유약을 씌어 가마에서 환원 상태로 구우면 철 안료는 검은색 문양으로 나타난다. 15세기 후반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일대에서는 물고기, 모란당초, 연당초 등을 빠르고 강한 필치로 그려내는 독특한 철화문이 제작되었는데, 특별히 이를 계룡산분청사기라고 부른다.
- 귀얄 기법은 귀얄에 백토를 발라 그릇 표면을 빠르게 칠하는 장식 기법이다. 귀얄은 붓처럼 생긴 도구를 말하는데, 돼지털과 같이 뻣뻣한 털 등을 묶어 넓고 편평하게 만든 것이다. 그릇 표면에는 빠른 운동감이 느껴지는 귀얄 자국과 백토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자국이 등이 태토 색과 대비를 이루며 귀얄 기법만의 독특한 미감을 형성한다.
- 덤벙 기법은 백토물에 그릇을 담가 백토를 분장하는 기법으로, 백토가 전체적으로 두껍게 씌워져 언뜻 보기에는 백자와 구별하기 어렵다. 주로 굽다리를 잡고 거꾸로 담그기 때문에 굽 언저리에 백토가 묻지 않은 경우를 볼 수 있으며, 백토가 흘러내린 자국도 볼 수 있다. 분청사기 장식 기법 가운데 가장 마지막인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유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