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문(四大門)
사대문은 한양도성과 함께 세워진 네 개의 대문으로, 수도를 방어하고 도성을 드나드는 통로였다. 북쪽의 숙정문(肅靖門),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은 모두 왕실의 존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조선의 정치 이념인 유교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4대 덕목을 표현하고 있다.
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4대문 중 하나로 '지(智)'를 상징하는 북쪽 대문이다. 한양 건설과 함께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의 동쪽 고개에 건립되었다. 처음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으로 바뀌었다. 이 문은 1413년(태종 13)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평상시에는 혜화문(惠化門)이 그 기능을 대신했다. 다만 나라에 가뭄이 심하게 들었을 때는 양(陽)의 기운을 가져온다는 남쪽 숭례문을 닫고, 음(陰)의 기운을 가진 숙정문을 열어 기우제를 지냈다. 반면 비가 계속 내리면 숙정문을 닫고 날이 개기를 바라는 기청제를 치렀다. 숙정문은 산 중턱의 험준한 곳에 위치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현재 남아 있는 도성문 가운데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유일한 문이다. 또한 다른 도성문과 달리 육축의 상부 천장이 석재 홍예로 구성되어 있다. 삼청지구 성곽 복원 때, 문루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했으나 1976년 문루가 복원되었다.
흥인지문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동쪽 대문으로 흔히 '동대문'이라고 불린다. 성벽과 이어진 축대에 아치형의 통로를 내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세웠다. 서울의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없다. 문루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역할도 했다. 흥인지문이 들어선 곳은 지세가 낮아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이었다. 따라서 방어상의 약점을 줄이기 위해 북쪽 성벽을 계단 모양으로 13m 정도 들여 쌓았다. 또한 성문 바깥쪽에는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어 적을 방어했는데 이는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흥인지문은 1869년(고종 6)에 개건한 것이다. 이때 문터를 8척(약 2.5m) 가량 올린 후 홍예를 새로 쌓았기 때문에 주변 성벽보다 성문이 높다. 이후 흥인지문은 1911년 시구개정사업으로 북측에 도로가 생기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숭례문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의 '숭례(崇禮)'는 '예절[禮]을 높인다'는 뜻이며,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린다. 남대문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한양도성에서 남쪽 대문으로서 역할을 했다. 숭례문은 주로 서울의 서쪽 교통을 담당했으며 통행량도 많았다. 그 위상에 걸맞게 도성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아치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또한 유일하게 현판이 세로 방향으로 쓰여 있는데,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고 한다. 1395년(태조 4)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에 완공되었고, 1448년(세종 30), 1479년(성종 10), 1868년(고종 5)에 큰 개축이 있었다. 이후 500여 년 동안 원형을 유지해 오다가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명목 하에 양쪽 성벽이 헐리면서 도로 한가운데에 고립되었다. 2008년 방화로 문루가 훼손되었다가 2013년 복구되었다. 이때 좌우 성벽 일부도 함께 복원되었다.
돈의문
돈의문은 '의(義)를 두텁게 하는(敦) 문'이라는 뜻으로 '서대문'이라고도 불린다. 태조 때 처음 사직터널 부근에 세워졌으나,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다고 하여 1413년(태종 14)에 폐쇄되었고, 대신 남쪽에 서전문(西箭門, 경희궁 서쪽 언덕으로 추정)을 열었다. 그러다가 다시 1422년(세종 4)에 도성을 대대적으로 고쳐 쌓으면서 서전문을 닫고, 오늘날 정동 사거리에 돈의문을 새롭게 조성했다. 이때 건립된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新門)으로 불렸고, 길의 이름도 신문로가 되었다. 이후 돈의문은 500년 넘게 원형을 유지해 오다가 1915년 전차 노선이 복선화되면서 훼철되어 건축자재로 매각되었다. 현재 돈의문 터에는 공공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