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仁王霽色)>는 2021년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오늘날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노년에 완성한 대표작으로 비가 내리고 갠 인왕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인왕제색도의 의미와 해석
<인왕제색도>는 세로 79.2cm, 가로 138.0cm로 조선시대 회화 가운데 비교적 크기가 큰 편이다. 오른쪽 첫 번째 줄에는 “인왕제색(仁王霽色)”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이는 “인왕산의 비가 개다”라는 뜻이다. 다음 줄의 “겸재(謙齋)”는 정선의 호이고, 마지막 줄의 “신미 윤월 하완(辛未閏月下浣)”은 “신미년(1751년) 윤 5월(양력 7월) 하순”이다. “겸재” 아래에는 작가의 이름인 “정선(鄭敾)”과 자(字)인 “원백(元伯)”을 새긴 도장을 찍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76세되던 해인 1751년 7월에 비가 갠 후의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화가가 직접 글을 남긴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정선은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 아래인 지금의 청운동 일대, 경복고등학교 자리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다. 52세인 1727년에는 인왕산 아래의 옥인동으로 이사했으므로, 인왕산은 정선이 살았던 동네의 뒷산인 셈이다. 인왕산의 주봉인 치마바위는 본래보다 더 우뚝 솟아 있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게다가 진한 먹을 묻힌 붓을 몇 번이나 반복해 거침없이 그어 내려 물기를 머금은 단단한 봉우리의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반면 주변 산자락의 나무와 바위 등은 간략하게 나타내고, 한양 성곽은 점으로 툭툭 찍어 묘사했다. 인왕산을 싸고 있는 안개구름은 먹의 농담을 효과적으로 조절해 공간감과 실체감을 더해 준다.
한편 그림 아래쪽에는 집이 있는데 학자들은 이 집이 누구의 집이며 누구를 위해 <인왕제색도>를 그렸는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정선의 평생지기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쾌유를 기원하며 비가 갠 인왕산을 그렸다고 해석한 연구가 있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럼에도 <인왕제색도>는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으로서 한국미술사의 전환점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미술사적 가치_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란 중국풍의 관념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실제 하는 경관을 겸재 정선 특유의 화풍으로 그려낸 것이다. 사전적인 해석으로 '진경(眞景)'은 ‘실재하는 풍경’이라는 뜻의 '실경(實景)'을 말한다. 그리고 이 '진경'에는 실재하는 경치에서 더 나아가 '선경(仙景)'이라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즉 '진경'은 '참 경치', '진짜 경치'를 말하는 것으로 작가가 보고 느낀 감동과 환의까지 그림 속에 투영한 것이다.
겸재는 중국의 화법을 충실하게 익히고 연구해 한국의 산천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즉 전통적인 절파계의 북종화법과 새롭게 유입된 남종화법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으로 창안한 것이다. <인왕제색도>에서는 비에 젖은 봉우리의 웅장하고 강렬한 인상을 사실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다시점(多視点)을 활용했다. 전경은 위에서 아래로 내다보이는 부감법을 사용했지만 원경은 위로 올려다 보는 고원법을 구사했다. 즉 위쪽의 거대한 산봉우리들은 밑에서 위로 올려다 보고, 아랫부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도록 시선 처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시점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시각적인 혼란을 줄이기 위해 나무와 나무로 연결시킴으로써 통일감을 주었다. 덕분에 마치 전경의 위치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듯한 현장감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산의 거친 질감과 나무의 세밀한 묘사에 집중하는 동시에 단단한 구도와 명암의 대비를 통해 산수의 심원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이러한 기법은 후대 산수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상과 같이 겸재 정선은 진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조선의 산수 풍경과 자연미를 담아낸 진경산수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인왕제색도의 미술사적 의의는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과 겸재 정선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