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직지심체요절 』은 1372년(공민왕 21)에 백운화상(白雲景閑) 경한(景閑, 1299 ~ 1374)이 부처와 조사(祖師)들의 말씀 가운데 중요한 내용들을 추려 편찬한 불교 서적으로 정식 명칭은 『 백운화상 초록 불조 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이다.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直指)』 등으로 간략하게 부르기도 한다. 인간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직지(直指)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백운 경한이 입적한 뒤에 그의 제자들은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 직지 』를 간행했다. 이는 『직지』권말에 간행한 일시, 장소 등을 기록한 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1377년 청주목(淸州牧) 밖에 있는 흥덕사(興德寺)에서 주자(鑄字)로 인쇄되었다
위 기록 덕분에 『직지』는 1377년에 금속활자로 인쇄한 세계 최초의 책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4세기 후반 고려의 지방 사찰에서도 금속활자 인쇄가 이루어졌으며, 고려시대의 금속활자의 발명이 적어도 13세기 전반 혹은 그 이전으로까지 올라갈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금속 활자로 간행된 원본은 하(下)권만이 전해지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직지심체요절』이 현재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된 까닭은 1886년 당시 주한 프랑스공사 콜랭 드 플랑시 (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직지』를 수집해 간 뒤 앙리 베베르를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박병선(1923~2011) 박사가 『 직지 』를 발견하면서,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고려시대 금속 활자
『직지심체요절』은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으로, 세계 인쇄 문화의 역사를 새롭게 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금속 활자는 서양에서 처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1440년대 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로 성서를 찍어 내는 데 성공하면서, 다양한 언어로 인쇄된 성경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것은 유럽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사건으로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 인쇄를 ‘천 년 동안의 최대 사건’으로 꼽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이 구텐베르크의 인쇄본 성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직지』의 발견을 통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 고려시대에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직지』 간행 이전부터 금속 활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1234~1241년 최우의 명령에 따라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이라는 책을 금속 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기록만 있고 실물은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상정고금예문』은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 활자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선 것으로 고려시대에 인쇄술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금속활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 이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책을 베껴 쓰는 필사를 하거나 목판에 새겨 인쇄해야 했다. 팔만대장경으로 대표되는 목판 인쇄술은 대량으로 복제가 가능했지만 보다 많은 종류의 다양한 문헌을 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책의 내용을 고칠 때마다 목판을 다시 새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래되면 썩거나 부서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반해 금속 활자는 글자를 금속으로 하나하나 따로 만들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 따라 글자를 조합해 새로운 책을 한꺼번에 계속 찍어낼 수 있었다. 또한 나무가 아닌 금속이라 더 튼튼하고 세월이 지나도 글자 모양이 쉽게 변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