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에 위치한 청해진(淸海鎭) 유적은 통일신라시대의 해상 군사기지이자 당대 동아시아 국제 무역의 거점이었다. 흥덕왕 시기에 해적이 들끓자 828년(흥덕왕 3)에 당(唐)에서 귀국한 장보고(張保皐)가 왕의 허락을 받아 설치했다. 장보고는 해적을 소탕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청해진을 거점 삼아 당·신라·일본을 연결하는 국제무역을 주도했다.
설치
9세기 초 신라의 해안에는 해적들이 빈번하게 출몰했다. 해적들은 당을 오가는 무역선과 신라의 조운선을 약탈하고 서남해 지역을 습격했다. 또한 신라인들을 납치해 당나라 각지에 팔아 넘기기도 했다. 이러한 해적들의 출몰로 백성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았고, 국가 재정은 악화되었다. 그러나 당시 신라 조정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해적을 소탕할 능력이 없었다.
이 무렵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장보고는 신라인들이 노비로 매매되는 사실에 분노하며 828년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직후 흥덕왕에게 해적 소통을 위해 청해(淸海, 오늘날의 전남 완도 지역)에 군진(軍鎭)을 설치하고 군사 1만 명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흥덕왕은 장보고의 요청을 받아들여 청해진을 설치하고 그를 ‘대사(大使)’로 임명한 뒤 군사 1만 명을 지휘하게 했다.
청해진은 지금의 완도읍 장좌리와 죽청리 일대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길목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육지와 가까운 섬으로 모든 방향에서 다가오는 배들을 감시할 수 있었다. 또한 수심이 깊어 선박을 정박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주변에 많은 섬들이 태풍으로 생기는 파도를 효과적으로 막아주었다. 이러한 청해진의 군영 본거지는 장군섬[장도, 將島]이었다. 이곳 중앙에는 망대가 있어 멀리 남해안 일대와 해남, 강진을 지나 당나라의 산둥 반도로 출입하는 해로를 감시할 수 있었다. 또한 장군섬 둘레에는 10㎝ 간격으로 목책(木柵)을 박아 외부 선박의 접근을 막았으며, 장군섬에 성을 쌓아 방어력을 높였다.
당나라 두목(杜牧)의 『번천문집(樊川文集)』에 따르면 태화(太和, 828~835년) 연간 이후로는 신라인을 잡아다 파는 행위가 말끔히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러한 평가를 통해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이후 해적을 소탕하고 서남해 지역을 안정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국제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역할과 오늘날의 흔적들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는 당과 일본에 무역 거점을 만들어 활발하게 무역활동을 전개했다. 중국에는 산둥반도의 적산포(赤山浦), 양쯔강과 회하(淮河) 유역의 초주(楚州)와 연수현(漣水縣), 양저우(揚州)로 이어지는 무역 기지를 구축해 신라의 대당 무역을 주도했다. 일본에는 하카다[博多]의 무역 기지를 바탕으로 무역 활동을 전개했는데, 장보고의 선단이 가져오는 무역품은 일본 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청해진은 국제적인 무역항구답게 다양한 물건들을 취급했다. 당나라의 비단, 약재, 공예품, 도자기, 서적과 서역의 향료, 상아, 보석류, 카펫, 유리 제품 등을 거래했으며, 일본에서는 금과 명주 등을 들여와 팔았다. 신라의 수출품은 주로 금, 은, 비단, 세공품, 그리고 인삼과 같은 약재였다. 향료나 낙타, 불상 등 진귀한 물건은 당으로부터 수입해 다시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청해진은 당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해 중계 무역을 진행했다. 게다가 강한 수군까지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청해진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지배하며 강력한 해상왕국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장보고가 신라 왕실의 왕위 다툼에 휘말려 갈등을 겪다가 841년에 피살되면서 청해진은 그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장보고 사후 신라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가 청해진을 운영하려 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851년에 신라 조정은 청해진 백성들을 모두 벽골군(碧骨郡, 오늘날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킨 뒤 청해진을 혁파하였다.
이상과 같이 823년부터 851년까지 23년 동안 동아시아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청해진은 폐쇄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관련 유적과 유물은 대부분 사라졌다. 다만 그 근거지였던 전라남도 완도에는 아직도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특히 전체 면적이 124,938㎡(37,794평)인 장도(將島)라는 작은 섬에서 청해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장도에 대한 발굴조사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했다. 10여 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장도에 설치되었던 성곽과 건물지의 규모가 확인되었고, 청해진의 활동과 관련된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 섬은 현재 사적 제 30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