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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소문의 종류 사소문(四小門)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사대문(四大門)을 제외한 규모가 작은 4개의 소문을 총칭하는 말이다. 숙정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위치한 동북의 혜화문(惠化門, 옛 이름은 홍화문), 흥인지문과 숭례문 사이에 위치한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에 위치했지만 현재는 멸실된 남서의 소의문(昭義門, 옛 이름은 소덕문), 돈의문과 숙정문 사이에 위치한 서북의 창의문(彰義門)이 사소문에 해당한다. 혜화문(惠化門)혜화문은 1396년(태조 5)에 창건되어 강원도와 함경도 지역을 오가는 동북관문의 역할을 했다. 속칭 '동소문(東小門)'으로 불렸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다. 1511년(중종 6)에 창경궁 정문의 이름도 '홍화문(弘化門)'이라서 서로 혼동된다는 이유로 '혜화문'으로 .. 2025. 6. 3.
사대문(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소개 사대문(四大門)사대문은 한양도성과 함께 세워진 네 개의 대문으로, 수도를 방어하고 도성을 드나드는 통로였다. 북쪽의 숙정문(肅靖門),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은 모두 왕실의 존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조선의 정치 이념인 유교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4대 덕목을 표현하고 있다.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4대문 중 하나로 '지(智)'를 상징하는 북쪽 대문이다. 한양 건설과 함께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의 동쪽 고개에 건립되었다. 처음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으로 바뀌었다. 이 문은 1413년(태종 13)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평상시에는 혜화문(惠化門)이 그 기능을 대신했다. 다만.. 2025. 5. 30.
한양도성의 건설과 수난 그리고 복원 서울의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양(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세계의 여러 도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또한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한 문화유산이다. 한양도성에는 8개의 성문(城門)과 2개의 수문(水門), 6개의 치(雉), 2군에의 곡성(曲城), 봉수대(烽燧臺) 등의 시설이 있다.한양도성의 건설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4년 8월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했다. 궁궐과 종묘, 사직 등을 차례로 완성한 태조는 수도를 효과적으로 방위하기 위해 1396년(태조 4)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이듬해부터 도성 축조에 착수했다. 한양을 둘.. 2025. 5. 28.
석굴암의 창건과 석실의 구조 석굴암은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동쪽에 있는 석굴로,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석굴암은 현존하는 유일한 인공 석굴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크며, 뛰어난 건축미와 조각미를 보여준다. 국보 제24호이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 석굴암의 창건 시기석굴암은 8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우선 석굴암의 창건 시기가 8세기 중엽으로 통용되는 까닭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남겨진 불국사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권 제5(卷第5)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神文代)〉에는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2025.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