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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소개 사대문(四大門)사대문은 한양도성과 함께 세워진 네 개의 대문으로, 수도를 방어하고 도성을 드나드는 통로였다. 북쪽의 숙정문(肅靖門),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은 모두 왕실의 존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조선의 정치 이념인 유교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4대 덕목을 표현하고 있다.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4대문 중 하나로 '지(智)'를 상징하는 북쪽 대문이다. 한양 건설과 함께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의 동쪽 고개에 건립되었다. 처음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으로 바뀌었다. 이 문은 1413년(태종 13)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평상시에는 혜화문(惠化門)이 그 기능을 대신했다. 다만.. 2025. 5. 30.
한양도성의 건설과 수난 그리고 복원 서울의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양(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세계의 여러 도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또한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한 문화유산이다. 한양도성에는 8개의 성문(城門)과 2개의 수문(水門), 6개의 치(雉), 2군에의 곡성(曲城), 봉수대(烽燧臺) 등의 시설이 있다.한양도성의 건설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4년 8월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했다. 궁궐과 종묘, 사직 등을 차례로 완성한 태조는 수도를 효과적으로 방위하기 위해 1396년(태조 4)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이듬해부터 도성 축조에 착수했다. 한양을 둘.. 2025. 5. 28.
석굴암의 창건과 석실의 구조 석굴암은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동쪽에 있는 석굴로,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석굴암은 현존하는 유일한 인공 석굴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크며, 뛰어난 건축미와 조각미를 보여준다. 국보 제24호이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 석굴암의 창건 시기석굴암은 8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우선 석굴암의 창건 시기가 8세기 중엽으로 통용되는 까닭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남겨진 불국사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권 제5(卷第5)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神文代)〉에는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2025. 5. 26.
창덕궁의 역사와 소개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위치한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조성되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의 지형과 조화를 이루며 건축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역사창덕궁은 1405년(태종 5)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조선의 궁궐이다. 이미 1394년(태조 3)에 창건한 경복궁이 있었지만, 왕자의 난을 겪고 옹립된 정종(定宗, 1357~1419)은 옛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천도했다.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종은 경복궁의 동쪽 향고동에 이궁(移宮)인 창덕궁을 짓고 한양으로 재천도했다. 그리고 개경을 떠나 한양에 도착했을 때 정궁인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으로 이어.. 2025. 5. 22.
경복궁의 역사와 광화문 및 주요 전각 소개 경복궁(景福宮)은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으로 사적 117호로 지정되었다. 1395년(태조 4)에 창건되어 정궁(正宮)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5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었다. 경복궁의 역사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4년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했다. 『주례(周禮)』의 정치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예법에 따라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지었다. '경복(景福)'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이외에도 강녕전.. 2025. 5. 20.
<인왕제색도>의 해석과 가치_진경산수화 는 2021년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오늘날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노년에 완성한 대표작으로 비가 내리고 갠 인왕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인왕제색도의 의미와 해석는 세로 79.2cm, 가로 138.0cm로 조선시대 회화 가운데 비교적 크기가 큰 편이다. 오른쪽 첫 번째 줄에는 “인왕제색(仁王霽色)”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이는 “인왕산의 비가 개다”라는 뜻이다. 다음 줄의 “겸재(謙齋)”는 정선의 호이고, 마지막 줄의 “신미 윤월 하완(辛未閏月下浣)”은 “신미년(1751년) 윤 5월(양력 7월) 하순”이다. “겸재” 아래에는 작가의 이름인 “정선(鄭敾)”과 자(字)인.. 2025. 5. 19.